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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0. 20世 〉43. <부정공>통사랑선공감가감역증통훈대부호조좌랑공휘우석정려기(通仕郎繕工監假監役贈通訓大夫戶曹佐郞公諱禹錫旌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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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부정공>진사증동몽교관조봉대부공휘선호정려기(進士贈童蒙敎官朝奉大夫公諱善浩旌閭記)
進士贈童蒙敎官朝奉大夫公諱善浩旌閭記 士有至行而表厥宅里此有國之盛典也我朝敦倫出治忠孝貞烈殆乎此屋可封而挽近以來文勝爲弊名或浮實曷足以徵信於今與後哉故進士趙公諱善浩以孝聞至蒙旌閭 贈敎官可見其實跡之非誣而褒典之不爽也棹標既成其孫重燮介孝君秉瑚問記於余曰吾祖幼有至性養親以誠志物備極親疾嘗糞露禱割指進血及喪哀慽動人凡百所行一如古孝子之爲鄉隣誦慕竟蒙天褒願得子之文欲以揚先烈而侈聖恩也余曰諸儒己列其行於官文籍俱在歸而刻諸楣端實行自著可以有徵而無間矣奚待余腐筆也噫如公懿行其可謂名實相副者歟敢爲之記用彰我聖朝崇化善俗之意云爾 恩津 宋秉璿 記 진사증동몽교관조봉대부공정려기(進士贈童蒙敎官朝奉大夫公旌閭記) 한 선비가 지행(至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마을에다 표(表)해 주는 것은 국가(國家) 존속(存續)의 성전(盛典)인 것이다. 우리 조정(朝廷)에서는 윤리(倫理)를 돈독히 하고 정치(政治)를 잘하여 충·효·정·열(忠考貞烈)로 정려(貞閭)를 받을 만한 사람이 많았으나, 요사이 겉으로만 꾸미는 게 폐단이 되어 그 이름이 사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나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오늘날의 믿을 만한 일이며 후세에 믿을 만한 일이라고 내세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고인(故人)이 된 진사(進士) 조선호(趙善浩)는 효자(孝子)로 소문이 나 정려(旌閭)를 받고 증직(贈職)으로 교관(敎官)을 받은 것을 보면 그 사실이 거짓이 아니며 포전(褒典)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정려문을 세운 뒤, 그 손자 중섭(重燮)이 이병호(李秉瑚)의 소개로 나에게 찾아와 기문(記文)을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 「우리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지성(至性)이 있어 정성(精誠)으로 어버이를 봉양하였기에 뜻 마추기와 물건으로 봉양하기에 모두 원만하였고, 어버이 병환에는 상분(嘗糞)과 노도(露禱: 들녘에 나가 비는 것)를 하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리기도 하였으며 초상에는 그 슬퍼함이 남까지 감동(感動)케 하는 등 모든 행동(行動)을 옛날 효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여 고을 사람들의 송모(誦慕)한 바가 되었고 드디어 임금께서 내리시는 포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대의 글을 받아다가 선열(先烈)을 드러내고 성은(聖恩)을 빛나게 할까 하오」라고 말한다. 이에 나는, 「고을 선비들이 그의 행적(行跡)을 관청에 보고하였고, 또 문적(文籍)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돌아가 그것만 미단(楣端)에 새겨 두어도 그의 행적이 나타나 증거로서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인데, 하필 나의 하찮은 글을 기다릴게 뭐 있나!」라고 말했다. 아! 공(公)의 아름다운 행실이야말로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히 기문(記文)을 지어 우리 성조(聖朝)의 아름다운 풍습에 감화(感化)되는 것, 숭배(崇拜)하는 뜻을 나타나게 한다. 德殷 宋秉璿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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